"마음에 안 들어서"로는 바꾸지 못합니다
여권에 한 번 올라간 로마자 성명은 원칙적으로 그대로 갑니다. 바꿀 수 있는 경우가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2항에 열한 가지로 정해져 있고, 그 목록에 들지 않으면 신청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철자가 촌스러워서, 다른 표기가 더 예뻐 보여서, 표준 표기법과 달라서. 셋 다 목록에 없습니다.
규정이 이렇게 빡빡한 이유는 여권이 국제 신원 확인의 기준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여권 이름은 비자·항공권·해외 계좌·학위증이 서로를 대조하는 기준점 역할을 하고, 그 기준점이 흔들리면 대조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순서를 이렇게 잡았습니다. ① 내 상황이 열한 가지 중 하나인지 확인하고, ② 그렇다면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 보고, ③ 아니라면 애초에 바꿀 일이 없게 정하는 법으로 넘어갑니다.
미리 밝혀 둘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열한 가지 안에는 "발급받은 뒤 그 여권으로 출입국한 기록이 없는 경우"가 들어 있습니다. 여권을 만들어 두고 아직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면, 여기에 해당하는지부터 확인하세요. 가장 문턱이 낮은 길입니다.
바꿀 수 있는 열한 가지 경우
외교부 여권안내 "로마자성명 표기의 변경 허용 요건"이 정리한 목록입니다. 번호는 외교부 페이지의 순서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 여권의 로마자성명이 한글성명의 발음과 명백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
- 해외 취업·유학 등으로 이미 다른 로마자성명을 사용하고 있어 여권의 표기와 일치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
- 가족의 성(姓) 로마자 표기와 다르게 표기된 경우
- 배우자의 성(姓)을 함께 적거나, 이미 적은 배우자 성을 바꾸거나 뺄 필요가 있는 경우
- 로마자성명이 명백하게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
- 한글성명을 개명한 경우
- 여권을 발급받은 뒤 그 여권으로 출입국한 기록이 없는 경우
- 18세가 되어 여권을 새로 발급받는 경우
- 이민 비자를 받은 사람이 비자의 로마자성명과 일치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
- 입국이 규제된 사람과 로마자성명이 같아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
- 그 밖에 외교부장관이 로마자성명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여기서 가장 많이 오해받는 것이 ①번입니다. "발음이 다르니까 바꿀 수 있다"로 읽히지만, 뒤에 단서가 붙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표기라면 발음이 다르다는 이유로는 바꾸지 못합니다.
같은 페이지가 드는 예시는 HONG GILDONE에서 HONG GILDONG으로 고치는 경우입니다. GILDONE은 '길동'을 읽을 방법이 사실상 없는 표기라 ①에 해당하지만, HYUN·YOUNG·WOO처럼 이미 다수가 쓰는 표기는 "표준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는 손대지 못합니다. 아래 통계 섹션에서 다시 보겠지만, 그런 표기가 꽤 많습니다.
⑤번(부정적 의미)도 자주 인용됩니다. '범'을 BUM으로, '석'을 SUCK으로, '신'을 SIN으로, '국'을 KOOK으로 적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인정 여부는 심사에 달려 있고, "증빙 없이도 대부분 통과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외교부 안내 어디에도 없습니다. 피할 표기의 전체 목록은 여권 이름 6가지 원칙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내 상황이 열한 가지에 드는지 확인해 보세요
아래에서 지금 상황에 맞는 항목을 고르면, 이 글에서 사유별로 확인할 것만 추려 보여 드립니다. 항목 옆 번호는 위 목록의 사유 번호입니다.
가장 흔한 네 가지 사례별 절차
창구에서 실제로 많이 오가는 사유는 ①·③·④·⑥ 넷입니다. 넷 다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유를 증명하는 종이 한 장이 결과를 가릅니다. 말로 설명하는 사정은 심사 대상이 아닙니다.
① 발음이 명백히 다를 때
필요한 것은 "지금 표기로는 읽을 수 없다"는 근거입니다. 바꾸려는 표기를 이미 써 온 기록(해외 학위증, 재직증명서, 기존 비자)이 있으면 ②번 사유와 함께 걸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 본 50% 단서에 걸리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③ 가족과 성 철자가 갈렸을 때
아버지는 LEE인데 자녀 여권은 RHEE인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한국에서는 각자 여권을 따로 만들기 때문에 발급 시점과 담당자에 따라 성 철자가 갈릴 수 있고, 해외에서는 이 둘이 가족이라는 사실이 서류상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족의 여권 사본을 증빙으로 내고 한쪽에 맞추는 것이 ③번 사유입니다.
④ 결혼해도 법적 성씨는 바뀌지 않습니다
가장 자주 오해받는 대목입니다. 한국에서는 결혼해도 법적 성씨가 자동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④번은 "성이 바뀌었다"가 아니라 배우자의 성을 여권에 함께 적거나, 이미 적은 것을 바꾸거나 빼는 별개의 제도입니다. 증빙은 혼인관계증명서입니다. 성 자체를 바꾸려면 ④가 아니라 ⑥(개명)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결혼을 계기로 마음에 안 들던 철자를 새로 고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사실과 다릅니다. 한글 이름이 바뀌어야 로마자 표기를 새로 정할 여지가 생깁니다.
⑥ 개명했을 때
법원의 개명 허가 결정문이 나온 뒤에 신청합니다. 가족관계등록부가 정리되면 새 한글 이름에 맞는 로마자 표기를 정하게 되는데, 이때가 사실상 유일하게 표기를 처음부터 다시 고르는 순간입니다. 그러니 이 단계에서는 아래 통계 섹션을 먼저 읽고 정하시길 권합니다. 처리 기간은 법원 소관이라 외교부 안내로는 알 수 없습니다.
준비 서류와 비용
로마자 성명 변경은 별도 제도가 아니라 여권 재발급 신청 한 건으로 처리됩니다. 외교부 여권안내는 로마자성명 변경을 재발급 사유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고, 여권 수록정보의 정정·변경은 방문 신청만 가능하다고 안내합니다. 온라인 신청은 되지 않습니다.
성인 기준 구비 서류는 넷입니다.
- 여권발급신청서
- 여권용 사진 1매 (6개월 이내 촬영)
- 신분증
- 기존 여권
여기에 변경 사유를 증명하는 서류가 더해집니다. ③이면 가족의 여권 사본, ④면 혼인관계증명서, ⑥이면 개명 허가 결정문입니다. 사진을 새로 내므로 사진 교체와 이름 변경이 한 번의 신청으로 함께 처리됩니다. 사진 규격은 여권 신청 체크리스트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수수료는 전자 복수여권 10년 기준 52,000원입니다 (발급 수수료 40,000원 + 국제교류기여금 12,000원, 2026-08-30 외교부 수수료 안내 기준). 재외공관에서 신청하면 52불입니다. 유효기간·면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므로 나머지 구분은 외교부 수수료 안내에서 확인하세요.
처리 기간은 외교부 여권안내 페이지에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접수 기관과 시기에 따라 다르므로 신청할 때 그 기관에 직접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글에 "며칠 걸린다"는 숫자를 적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름을 바꾸면 여권번호까지 새로 부여됩니다
이름을 바꾸면 여권을 새로 발급받는 것이므로 여권번호도 함께 바뀝니다. 기존 여권에 붙어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어긋납니다. 순서대로 정리하세요.
- 기존 여권에 붙은 유효한 비자는 새 여권과 이름·번호가 어긋납니다. 각국 규정이 다르므로 해당 대사관·이민국 안내를 확인해야 합니다.
- 예약해 둔 항공권의 탑승자 이름은 여권 철자와 맞아야 합니다. 정정 가능 여부와 방법은 항공사마다 다릅니다.
- 마일리지·멤버십 계정은 이름이 다르면 적립과 발권이 막힙니다.
- 해외 은행·학교·자격증처럼 여권을 신분 증명으로 쓴 곳은 전부 정리 대상입니다.
항공권·예약 쪽 실무는 항공권·예약 이름 불일치 가이드에, 계정·명함·해외 생활 표기 정리는 해외 생활 표기 일관성 가이드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실무적으로 중요한 조언 하나. 출국이 임박했다면 순서를 뒤집는 편이 안전합니다. 여행을 먼저 마치고 돌아와 바꾸면, 예약된 항공권과 유효한 비자를 건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애초에 바꿀 일이 없게 정하는 법
여기까지 읽고 "생각보다 어렵네"라고 느끼셨다면 정확히 보신 겁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처음 정할 때 어긋날 여지를 줄이는 일입니다. 어긋남이 잘 생기는 자리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우리 데이터로 두 가지가 보입니다.
하나는 표준 표기와 실제 여권 표기가 크게 벌어진 음절입니다. 표기법대로 적으면 주변 사람들과 다른 철자가 되고, 다수를 따르면 표준과 달라집니다.
'우'를 표준대로 U로 적으면, 같은 '우'를 가진 사람 열에 아홉은 WOO를 쓰고 있는 상황에 놓입니다. 반대로 WOO로 적으면 표준 표기법을 따르지 않은 것이 됩니다. 어느 쪽도 틀린 선택은 아니지만, 가족·기존 서류와 다른 쪽을 고르면 나중에 대조가 어긋납니다. 격차가 큰 순서로 열 개를 뽑으면 이렇습니다.
| 음절 | 표준 표기 | 표준 점유율 | 통용 표기 | 통용 점유율 | 격차(%p) |
|---|---|---|---|---|---|
| 우 | U | 7.31% | WOO | 92.22% | 84.91 |
| 희 | HUI | 12.34% | HEE | 84.24% | 71.9 |
| 영 | YEONG | 18.65% | YOUNG | 79.67% | 61.02 |
| 현 | HYEON | 30.03% | HYUN | 67.96% | 37.93 |
| 순 | SUN | 35.89% | SOON | 63.67% | 27.78 |
| 욱 | UK | 34.75% | WOOK | 58.08% | 23.33 |
| 신 | SIN | 37.96% | SHIN | 61.28% | 23.32 |
| 기 | GI | 36.96% | KI | 58.31% | 21.35 |
| 운 | UN | 34% | WOON | 54.74% | 20.74 |
| 문 | MUN | 40.53% | MOON | 58.47% | 17.94 |
다른 하나는 표기가 반반으로 갈리는 음절입니다. 이쪽은 다수결이 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처음 정할 때의 판단 순서는 단순합니다. ① 가족이 이미 쓰는 철자 → ② 내가 이미 발급받은 서류(학위증·계좌·기존 비자)의 철자 → ③ 현지에서의 발음 전달력 → ④ 표준 표기. 앞의 둘이 비어 있을 때 비로소 뒤의 둘이 기준이 됩니다. 성씨 쪽 분포는 2024 여권 성씨 통계에, 표준 표기 규칙 자체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가이드에 있습니다. 본인 이름 전체를 한 번에 보고 싶다면 이름 표기 변환기에 넣어 보세요.
예외와 주의
하이픈과 띄어쓰기부터 봅니다. 여권 이름의 하이픈은 선택 사항이고, 한 번 정하면 바꾸기 어렵습니다. MIN-JUN과 MINJUN은 대부분의 시스템에서 같은 사람으로 처리되므로 실질적인 불이익은 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하이픈을 빼는 것 자체는 열한 가지 사유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예약·비자 입력란에서 하이픈을 어떻게 넣을지 같은 실무는 여권 영문명 하이픈 처리 방법에서 다룹니다.
50% 단서는 실무적으로 이렇게 읽힙니다. 많이 쓰이는 표기일수록 나중에 바꾸기 어렵습니다. KIM·LEE·PARK처럼 굳어진 성씨는 물론이고, 위 표의 통용 표기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대충 정하고 나중에 고치자"가 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밟을 별도의 불복 절차는 외교부 여권안내에 안내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반 행정 절차를 따르게 되며, 그전에 어떤 사유 번호로 어떤 증빙을 냈는지 다시 점검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신청은 서류를 아무리 보태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귀화·복수국적·재외국민은 판단 기준이 달라 여권 이름 특수 사례 가이드에서 따로 다룹니다.
출처와 계산 방식
이 글의 법령·서류·수수료 서술은 전부 외교부 여권안내 원문에서 가져왔고, 아래 출처 목록에 URL과 확인일을 밝혔습니다. 조문은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2항이며, 열한 가지 사유의 순서도 외교부 페이지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수수료와 처리 기간은 변동하므로 확인일 기준 값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최종 확인은 접수 기관에 하시기 바랍니다.
표의 점유율은 원자료의 표기별 건수를 해당 음절의 총 건수로 나눈 값이고,
격차는 통용 표기 점유율 − 표준 표기 점유율입니다.
표와 순위는 페이지를 만들 때 원자료 파일에서 다시 계산하므로,
본문에 손으로 적어 둔 숫자와 어긋날 여지가 없습니다.
원자료와 계산 과정은 통계 데이터 출처 안내에 공개해 두었습니다.
한 가지 한계를 밝혀 둡니다. 이 통계는 기준일까지 누적 발급된 여권을 집계한 것이라, 변경 신청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어떤 사유가 많이 인정되는지는 이 데이터로 말할 수 없습니다. 외교부는 그 수치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신청 건수·승인율을 적지 않은 이유입니다.